
경남 남해는 삼박자가 갖춰진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산양식 적지이고, 불황에도 흔들림이 거의 없이 상업유통 경제가 활기찬 곳이다. 또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가 춤추는 관광 도시다. 그러나 농업경제 시절의 삶은 고단했다. 남해에서는 계단식 논밭이 유독 눈에 띈다. 남해의 농지는 23%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파른 산을 촘촘히 계단식으로 일궈 농작물을 심었다. 숱한 돌을 일일이 손으로 캐내고, 담을 쌓고, 바닥에 진흙을 발라 논과 밭을 만들었다.
이같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세대는 노인이 되어갔다. 자연을 이겨온 남해의 노인, 집념의 남해 농부의 곁에는 언제부턴가 '나이팅게일'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향숙 노량보건진료소장이 주인공이다. 경상대에서 간호학 박사를 취득한 김향숙 소장은 남해 관내의 보건진료소에서 일해 왔다. 그녀는 본업인 보건진료 외에도 지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농어촌 의료취약지역에 설치된 보건진료소에서 주민의 건강을 살피고, 교육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웃음, 건강교육, 신체활동의 통합기법으로 농촌의 노인들과 호흡하고 있다. 김향숙 소장의 웃음치료 근거기반 이론은 '자기효능'과 '지역사회역량강화'이다. 한국웃음임상치료센터 교수이기도 한 김 소장은 4대 취약계층을 비롯한 의료 접근이 쉽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웃음건강증진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가 웃음과 건강을 전파하는 대상은 마늘 농업인, 남해 독일마을 파독간호사, 다문화가정, 장애우, 아동센터, 노인요양원 등이다. 적십자 장수대학에서는 희망풍차 웃음봉사활동도 한다. 김향숙 소장은 가는 곳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김 소장은 농어촌지역 노인이 당뇨, 관절염 등 만성적 신체건강 문제와 함께 일부 자존감 상실, 스트레스 등의 정신건강도 있음을 고려해 건강 체조와 심신 안정의 두 가지 해법을 생각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89년 선구보건진료소에서는 요통완화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2003년 동천보건진료소에 부임해서는 건강웃음체조를 보급하고, 마을마다 웃음지도자를 양성하여 2011년에는 공무원 친절 매너왕이 되었다.
주민들이 전국댄스경연대회에도 참가한 이 모임에는 삼동면 독일마을에서 오는 부부도 있다. 파독간호사인 우춘자 할머니와 독일인 남편 빌리씨가 수년 동안 함께 했다. 김향숙 소장은 가운 대신 스마일 마크가 새겨진 연노랑 댄스복을 입고 흥겹고 경쾌한 춤과 박장대소를 유도했다. 그녀는 구호를 '9988234'로 내세웠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다가 사흘째 편하게 죽자'는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바람이 담긴 구호다.
동천보건진료소에서는 서예교실 운영으로 고령자 마음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어르신들이 배움의 아쉬움과 붓글씨로 삶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2004년에 매주 3회씩 서예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마늘농사를 짓는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30여 명 꾸준히 참여했다. 노인들은 갈고닦은 붓글씨로 병풍 등을 제작하여 후손들에게 가보로 남기고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노인들은 서예를 통해 감정을 표현했고, 노인 우울증 감소와 스트레스 해소, 사회 적응력 향상 등에 효과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이같은 성과는 학자의 연구 논문 바탕이 되기도 했다.
김향숙 소장은 2009년부터 동천보건진료소에서 농부증 예방 건강체조를 보급했다. 들에서 일하는 도중에 체조로 농부증을 예방하게 하는 관절 운동을 생활화하게 한 것이다. 마늘 농사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힘든 만큼 농부증 유발 가능성도 높다. 이에 김 소장은 노랫가락에 맞춰 마늘종 스트레칭을 개발해 보급했다. 주민들은 마늘 농작업 도중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하루 네 차례씩 몸 풀기를 한다. 또 그녀는 '꽃내 건강대학'을 개설했다. 주민들은 매일같이 회관에 모여 노래 부르기와 함께 작업 아침식사 거르지 않기, 유연성 운동하기, 자세교정, 낙상예방, 농부증 완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3년 여름에는 더욱 활동이 왕성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하여 오후에는 가정을 방문하여 사자웃음과 거울웃음으로 노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 이상주 논설위원(letter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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